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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우지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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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시카가 타다후유라는 남자가 있었다. 무로마치 막부를 연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서자로, 보기 드문 군사적 재능을 지녔으나 다카우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그 생애를 마쳤다는, 비운의 인물이다. 타다후유는 1349년 나가토 탐제로 임명되어 빙고(현재의 히로시마현)에서 선정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의 양부가 실각하자 다카우지는 타다후유 토벌을 결정, 스기야마 마타시로를 자객으로 보냈다. 타다후유는 부하인 이소베 사콘노쇼겐과 카와시리 유키토시 등의 도움으로 토모노쓰에서 규슈로 몸을 피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최근 학설에 따르면, 그 전해에 타다후유를 남조 토벌에 파견할 당시 다카우지는 자신의 칼을 하사하며 필승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카우지의 칼이라 칭해지는 유물이 이곳 다케하라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다카우지의 칼이 진품이라면, 타다후유가 애초에 다카우지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이곳 다케하라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고대 일본사는 크게 다시 쓰이게 될 것이다. 이 일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식자들이 앞다투어 찾아왔다. 다케하라시의 '마치나미 보존지구'에 있는, 무가저택을 본뜬 숙소에서 다카우지의 칼 감정회가 열렸다. 이것은 감정회에 모인 네 명의 남녀가 본 덧없는 꿈.
발매
2024
번역된 소개예요 · 원문 보기

足利直冬(あしかがただふゆ)という男がいた。室町幕府を開いた足利尊氏(あしかがたかうじ)の庶子で、稀代の軍才を有していたが、尊氏に認められることなくその生涯を閉じたという、悲運の士だ。 直冬は1349年に長門探題(ながとたんだい)に任じられて備後(びんご:現在の広島県)で善政を敷いた。しかし、彼の養父が失脚すると、尊氏は直冬の討伐を決定、杉山又四郎(すぎやままたしろう)を刺客として差し向けた。直冬は配下の磯部左近将監(いそべさこんのしょうげん)や河尻幸俊(かわしりゆきとし)らに助けられ、鞆津(とものつ)から九州に落ち延びたというのが定説であった。 ところが最近の学説によると、その前年に直冬を南朝成敗に派遣した折りに、尊氏は自らの太刀を授け必勝を祈ったという。そして、尊氏の太刀と称される遺物がここ竹原で発見されたというのである。 尊氏の太刀が本物ならば、直冬が当初は尊氏の信任を得ていたこと、そして彼がここ竹原に逗留していたことが明らかになる。古代日本史は大きく書き換えられることになるだろう。 ことの真偽を確かめるため、識者たちがこぞって推参した。竹原市の「町並み保存地区」にある、武家屋敷を模した宿場で、尊氏の太刀の鑑定会が行われた。 これは、鑑定会に集った4名の男女の見たうたかたの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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